이란-영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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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영국의 관계는 19세기 그레이트 게임 시기부터 시작된 복잡한 역사를 지닌다. 양국은 석유 이권과 정치적 영향력을 둘러싸고 대립해 왔으며, 특히 1953년 모사데그 총리 축출 쿠데타와 2011년 영국 대사관 습격 사건은 관계 악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5년 이란 핵 협상 타결 이후 외교 관계가 점진적으로 회복되어 2016년 대사급 관계를 복원하였으나, 여전히 다양한 현안에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요
이란과 영국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대립과 협력을 반복해 온 관계이다. 19세기 영국은 이란에서 경제적 이권을 확보하려 했으며, 20세기 중반에는 석유 국유화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21세기 들어 이란의 핵 개발 문제와 국제 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으나, 2015년 핵 협상 타결을 기점으로 외교 관계가 복원되었다.
역사적 배경
19세기 영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그레이트 게임 시기, 영국은 이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1919년 영국은 이란을 보호령으로 삼으려 시도하였으나 이란 내 반발에 부딪혔다.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과 소련은 이란을 공동 점령하였고, 1953년에는 영국과 미국이 이란의 민선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그를 축출하는 쿠데타를 지원하였다. 이는 이란 내 반영 감정을 심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1년 외교 관계 단절
2011년 11월, 이란 시위대가 테헤란에 위치한 영국 대사관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이란 의회는 영국이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에 동참하자 영국 대사를 추방하는 결의안을 가결한 상태였다. 수백 명의 시위대는 대사관 건물을 공격하고 기물을 파손하였으며, 이에 영국 정부는 대사관을 폐쇄하고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2002년 이란의 미신고 핵 시설 폭로와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제 제재 결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관계 정상화와 대사관 재개관
단교 이후 양국은 2014년 6월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였다. 이는 이라크 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형성된 결과였다. 2015년 7월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된 후, 양국은 8월 23일 테헤란과 런던에서 각각 대사관 재개관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이 테헤란을 방문하였는데, 이는 영국 외무장관으로서 12년 만의 방문이었다.
대사급 외교 관계 복원
2016년 9월 5일, 영국과 이란은 대리 대사급이었던 외교 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하였다. 영국은 니컬라스 호프턴을 테헤란 주재 대사로, 이란은 하미드 바에이디네자드를 런던 주재 대사로 각각 임명하였다.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이를 양국 관계의 중요한 계기로 평가하며 인권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안과 전망
대사급 관계 복원 이후에도 양국 간에는 이란 핵 문제, 인권 문제, 중동 지역 정세 등 여러 현안에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영국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 결정에 따르지 않고 이란 핵 합의(JCPOA)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이란 내 반영 감정은 여전히 존재하며, 양국 관계는 국제 사회의 대이란 정책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