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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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1910~1987)은 삼성그룹의 창업주이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후 제일제당,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을 세워 한국 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호는 호암이며,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 철학을 남겼다.
생애 초기
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아버지 이찬우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16대조 계번이 입향조로 경남 의령에 정착하였다.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진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창업과 삼성그룹의 성장
1938년 대구 서문시장에 250평 남짓한 가게를 차려 삼성상회를 설립하였고, 이것이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제일제당, 삼성물산 등을 잇달아 세우며 사업을 확장하였다. 1969년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설립하여 전자제품 수출에 성공하였고, 73세의 나이에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였다.

언론·방송 진출
1964년 5월 TBC(동양방송)를 설립하고, 1965년 9월 중앙일보를 창간하여 방송과 언론 분야에도 진출하였다. 이후 중앙일보는 사돈인 홍진기 일가에게 넘겼다.
경영 철학
이병철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를 경영 철학으로 삼았다. 그는 경청, 적자생존보다 적는 자 생존, 아이디어의 연쇄, 미래를 읽는 독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할 것, 헛된 경험은 없다, 사람을 믿고 맡길 것,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할 것, 뇌를 유연하게 만들 것 등 9가지 성공 법칙을 강조하였다.
경쟁 관계
정주영(현대그룹)과는 5살 연하로 활동 시기가 비슷하여 한국 재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반도체, 중공업, 유통, 건설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하였다. 그 외 신격호(롯데), 김우중(대우), 구인회(LG) 등도 주요 경쟁자였다. 특히 LG 창업주 구인회와는 결정적으로 적대 관계가 되었다.

사망과 유산
1987년 11월 19일 뇌출혈 투병 중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77세로 사망하였다. 그가 창업한 삼성그룹은 1987년 당시 37개 계열사에 연매출 14조 원 규모로 성장하였으며,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그의 호를 딴 호암미술관이 용인에 조성되었고, 삼성재단을 통해 사회 공헌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