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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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京城府)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행정 중심지이자 경기도의 부(府)이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조선과 대한제국의 수도였던 한성부가 경성부로 개칭되면서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를 위한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핵심 거점이었으며, 1946년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시가 되면서 폐지되었다.
개요
경성부는 일제강점기 동안 유지된 서울의 행정 명칭이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본 제국은 기존의 수도였던 한성부의 지위를 격하시켜 경기도 산하의 행정 구역으로 편성하였다. 이곳은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식민 통치의 중심지였으며, 경기도청 소재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역사
1910년 10월 1일 시행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에 따라 한성부가 경성부로 개칭되었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수도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 이를 경기도의 관할 구역으로 편입시켰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경성이라는 명칭이 통용되었으나, 1946년 9월 28일 미군정에 의해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면서 경성부 체제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행정 구역 변천
경성부의 행정 구역은 도시화 과정에 따라 여러 차례 개편되었다.
- 1911년: 5부 8면제를 실시하였다. 성내 지역은 5부로, 성외 지역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면의 8면으로 구분하였다.
-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면적을 조정하였다. 용산, 숭신, 인창, 한지, 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남기고 나머지 성저십리 지역은 경기도 고양군 등으로 편입시켰다.
- 1936년: 고양군, 시흥군, 김포군의 일부를 편입하여 면적을 133.94km²로 확장하였다. 이는 1914년 대비 약 4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 1943년: 인구 증가에 따라 구(區) 제도를 도입하고 용산, 영등포, 동부출장소를 설치하였다.
하위 행정 구역
1943년 6월 10일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다음과 같은 8개 구가 설치되었다. 각 구의 하위 단위로는 정(町)과 목(丁目) 등이 존재하였다.
| 구 명칭 | 일본어 명칭 |
|---|---|
| 종로구 | 쇼로구 |
| 중구 | 주구 |
| 용산구 | 류잔구 |
| 동대문구 | 도다이몬구 |
| 성동구 | 조토구 |
| 서대문구 | 세이다이몬구 |
| 마포구 | 마호구 |
| 영등포구 | 에이토호구 |
사회 및 거주
경성부로 개칭된 이후 일본인의 거주가 본격화되었다. 일본인들은 주로 남촌(본정, 명치정 등)과 용산 일대에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이는 기존 한성부의 중심지였던 북촌 지역을 피하여 새로운 상권과 주거지를 구축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경성부는 식민 통치 기구와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근대적 도시 시설이 우선적으로 확충되는 불균형한 발전을 겪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