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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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파스트 협정은 1998년 4월 10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영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 그리고 북아일랜드의 주요 정당들이 체결한 평화 협정이다. 협정이 체결된 날이 부활절 이틀 전인 성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이라고도 불린다. 이 협정은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된 북아일랜드의 유혈 분쟁인 '더 트러블스(The Troubles)'를 종식하고 평화적인 자치 정부를 구성하는 기틀이 되었다.
역사적 배경
북아일랜드는 영국령 유지를 원하는 친영국 성향의 신교도(연합주의자)와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성향의 구교도(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으로 오랜 기간 유혈 사태를 겪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더 트러블스' 시기에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연합주의 준군사 조직 간의 무력 충돌이 빈발하였다. 특히 1972년 1월 30일 데리에서 영국군이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해 민간인이 사망한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무장 투쟁과 테러가 격화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평화 프로세스가 본격화되었고, 다자간 협상을 통해 1998년 최종 합의에 도달하였다.
협정의 주요 내용
협정은 크게 세 가지 축(Strands)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 북아일랜드 내부 체제: 신교도와 구교도가 함께 참여하는 권력 공유 정부를 구성한다. 이를 위해 북아일랜드 의회와 집행위원회를 설치하며, 주요 결정은 양측 공동체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 남북 관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간의 협력을 위해 남북 장관 회의와 실행 기구를 설립한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헌법 개정을 통해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다.
- 동서 관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간의 협력을 위해 영국-아일랜드 정부 간 회의와 영국-아일랜드 의회를 설립하여 양국 간의 유대를 강화한다.
이 외에도 준군사 조직의 무장 해제, 왕립 얼스터 경찰대(RUC)의 개혁 및 북아일랜드 경찰청(PSNI)으로의 대체, 관련 죄수들의 조기 석방 등이 포함되었다.
비준 및 발효
협정의 효력을 확정하기 위해 1998년 5월 22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양측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지역 | 투표율 | 찬성률 |
|---|---|---|
| 북아일랜드 | 81% | 71.1% |
| 아일랜드 공화국 | 56% | 94.4% |
양측 모두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됨에 따라 협정은 1999년 12월 2일을 기해 공식적으로 발효되었다. 이날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아일랜드의 영유권 포기를 담은 헌법 개정도 시행되었다.

이행 과정과 과제
협정 발효 이후에도 IRA의 무장 해제 문제 등으로 인해 자치 정부가 여러 차례 중단되는 난관이 있었다. IRA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무장 해제를 완료하였다. 2010년대 후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는 협정 유지에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의 물리적 국경 설치를 피하기 위해 영국과 유럽연합 간에 '북아일랜드 의정서'가 체결되는 등 협정의 정신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