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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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1910~1987)은 삼성그룹의 창업주이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후 제일제당,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을 세워 한국 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호는 호암이며,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 철학을 남겼다.
생애 초기
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아버지 이찬우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16대조 계번이 입향조로 경남 의령에 정착하였다. 조부 이홍석은 실사구시 유학자로 서당 문산정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병철은 5세부터 문산정에서 한문을 익혔고, 1922년 진양군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다. 이후 서울 수송보통학교, 중동중학교를 거쳤으나 모두 중퇴하였다. 1926년 박팽년의 후손 박두을과 결혼하였고,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진학하였으나 건강 악화와 유학 생활에 대한 회의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설립하며 사업을 시작하였고, 토지 사업으로 200만 평의 대지주가 되었다.
창업과 삼성그룹의 성장
1938년 대구 서문시장에 250평 남짓한 가게를 차려 삼성상회를 설립하였고, 이것이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삼성상회는 만주와 북경에 국내산 과일과 건어물을 수출하는 회사였다.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여 무역업을 본격화하였고, 설립 1년 만에 수입업자 7위에 올랐다.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으나 부산에서 다시 삼성물산을 세웠다.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하여 설탕의 수입 의존도를 100%에서 국내 생산 93%로 낮추었다. 1963년 동화백화점을 인수하여 신세계백화점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69년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설립하여 전자제품 수출에 성공하였고,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여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였다. 1983년 D램 사업 진출을 선언하는 '동경 선언'을 하여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기초를 다졌다.
언론·방송 진출
1964년 5월 TBC(동양방송)를 설립하고, 1965년 9월 중앙일보를 창간하여 방송과 언론 분야에도 진출하였다. 이후 중앙일보는 사돈인 홍진기 일가에게 넘겼다.
경영 철학
이병철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를 경영 철학으로 삼았다. 그는 경청, 적자생존보다 적는 자 생존, 아이디어의 연쇄, 미래를 읽는 독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할 것, 헛된 경험은 없다, 사람을 믿고 맡길 것,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할 것, 뇌를 유연하게 만들 것 등 9가지 성공 법칙을 강조하였다. 또한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경쟁 관계
정주영(현대그룹)과는 5살 연하로 활동 시기가 비슷하여 한국 재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반도체, 중공업, 유통, 건설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하였다. 그 외 신격호(롯데), 김우중(대우), 구인회(LG) 등도 주요 경쟁자였다. 특히 LG 창업주 구인회와는 결정적으로 적대 관계가 되었다. 이병철과 구인회는 지수보통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사망과 유산
1987년 11월 19일 뇌출혈 투병 중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77세로 사망하였다. 그가 창업한 삼성그룹은 1987년 당시 37개 계열사에 연매출 14조 원 규모로 성장하였으며,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그의 호를 딴 호암미술관이 용인에 조성되었고, 삼성재단을 통해 사회 공헌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후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등으로 분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