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윌리엄스
본 서비스가 제공하는 내용 및 자료가 사실임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언제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의사결정 및 법리적 해석, 금전적 의사결정에 사용하지 마십시오.
캐슬린 윌리엄스(Kathlyn Williams, 1879년 5월 31일 ~ 1960년 9월 23일)는 미국의 배우이다. 초기 무성 영화 시대의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으로, 연극 무대와 영화계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다. 1910년대 셀리그 폴리스코프 사의 간판 배우로 활약했으며,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 연출과 각본 집필에도 참여한 선구적인 여성 영화인이기도 하다.
초기 생애와 교육
캐슬린 윌리엄스는 몬태나주 부트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던 조셉 에드윈 윌리엄스와 메리 C. 보이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혈통은 웨일스와 노르웨이 계통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기록에는 출생 연도가 1888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1880년 미국 인구 조사 기록에 이미 1세로 등재되어 있어 1879년생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지역 극단에서 활동했다. 1901년 몬태나 웨슬리언 대학(현 로키 마운틴 칼리지)을 졸업한 후, 지역 구리 광산 재벌인 윌리엄 A. 클락의 후원을 받아 뉴욕에서 본격적인 연기 공부를 시작했다.
연기 및 영화 경력
1908년 바이오그래프(Biograph) 사에서 D.W. 그리피스 감독의 작품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1910년 셀리그 폴리스코프(Selig Polyscope) 사로 자리를 옮긴 후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그녀는 금발의 외모와 더불어 위험한 장면을 직접 소화하는 대담한 연기 스타일로 유명했다.
1914년에는 배우 활동에 그치지 않고 직접 영화를 연출하거나 각본을 쓰는 등 제작 분야에도 참여했다. 1917년 출연한 무성 드라마 《빅 팀버(Big Timber)》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10년부터 1932년 은퇴할 때까지 약 9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무성 영화 시대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개인 생활
윌리엄스는 생전 두 차례 결혼했다. 1913년 빅터 카이너와 결혼했으나 1915년 이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빅터 카이너 주니어는 1922년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이후 1916년 배우이자 영화사 임원인 찰스 에이튼과 재혼했으나 1931년 다시 이혼했다.
사망
1932년 영화계에서 은퇴한 후 노년을 보내다 1960년 9월 2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